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알려진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 Vénus de Milo는 1820년에 밀로스섬에서 발견된 석상이다. 발견 직후 오스만 제국에 프랑스 대사로 파견되었던 리비에르 후작Le marquis de Rivière이 사들여 루이 18세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선물했고, 1821년 루브르로 들어왔다.

비너스에 대한 기록

프랑스 탐험대의 일원으로 그리스 섬들을 방문했던 쥘 뒤몽 뒤르빌이 밀로스섬에서 석상을 발견한 당시 대사에게 보낸 기록이 있습니다.
"조각상은 2개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키는 약 6피트에 상체를 벗고 있는 여인이다. 왼손에는 사과를 들고 오른손은 허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 발로 떨어지는 옷의 벨트를 잡고 있으나 두 팔은 절단되어 있다. 머리에는 머리띠를 하고 머리카락은 뒤로 올려 묶었고, 잘리지 않았다면 아름다웠을 코가 잘려 있으며, 남아 있는 발은 맨발이고 귀가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귀고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짜 비너스 석상은 따로있다?

그런데 프랑스에 도착한 석상에는 팔이 없었습니다. 조금 남아있는 팔의 윗부분에 팔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만 뚫려 있고, 귀고리와 머리띠도 없었습니다. 보고서의 내용과 석상의 남겨진 부분을 조사하고, 없어진 팔이 취했을 동작을 유추한 뒤 비너스라고 결론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석상을 밀로스섬에서 숭배하던 암피트리테Amphitrite or Halosydne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양한 시대의 표현 방식

얼굴에서는 기원전 5세기(고전기)의 표현 방식을 볼 수 있고, 머리 모양과 몸통에서는 기원전 4세기 조각가인 프락시텔레스Praxitèle의 영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선형으로 꼬인 곡선미는 기원전 3세기에서 1세기 사이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표현인데, 특히 공간감과 머리와 팔이 1대 8로 나뉘는 신체 비율은 헬레니즘 시대에 나타난 혁신적인 변화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모습 그대로의 비너스

발견된 직후에는 사과나 거울을 들고 있는 모습 또는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거나 아레스에게 월계수를 씌워주는 모습 등 여러 복원 계획이 있었으나, 결국 복원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되었습니다.

+ 가이드 노트

1802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 지역은 제국에서 독립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밀로의 비너스>의 발견으로 다시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찬양(Philhellenism)이 일고 사람들이 그리스의 독립에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석상의 프랑스 입성은 그리스의 유럽 복귀를 알리는 듯했고 그리스 자유의 상징처럼 되었죠. 더불어 당시 프랑스가 <라오콘>을 이탈리아에 반환하면서 내세울 만한 그리스 작품이 없었던 차에 루브르 박물관의 명성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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