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르누아르도 등판한 프랑스 역대급 미술 전시회

<모나리자>로 향하는 길에 천장을 바라보면 화려한 장식만큼이나 프랑스의 찬란했던 과거를 보여주는 '살롱 카레(Salon carré)'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모난 거실' 혹은 '응접실'을 의미하는 '살롱 카레'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성대한 미술 전시회를 개최한 공간이다. 왕궁에서 전시회를 연 이유는 무엇일까?

살롱전에 목숨 건 이유

이른바 '절대 왕정'이 무너지는 18세기까지 프랑스의 화가들은 국가의 녹봉을 받으며 생활하는 공무원에 가까웠습니다. '살롱 카레'에서 열린 '살롱전(le Salon)'은 '아카데미'라는 일명 '국립 예술원'의 지도를 받던 화가들의 졸업 전시회에서 출발한 대회입니다. 국왕이 직접 전시를 보러 온 것은 물론 나폴레옹 시대부터는 수상자에게 막대한 상금도 주어져 많은 화가가 앞 다투어 참가하려 했습니다. 또한 신예 예술가들이 자신의 그림을 팔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19세기 중반 모네나 르누아르 같은 젊은 인상파 화가들이 기를 써서 도전한 이유이기도 하죠. 살롱전은 (역사가 끝나는 19세기 후반까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거의 모든 화가와 관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천장에는 성대한 미술 전시회가 열렸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천장이 시작되는 네 귀퉁이에는 라파엘로, 루벤스와 같이 우리도 알 만한 유명한 화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죠. 그리고 그 사이로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이름도 보입니다. 천장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벽면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온 성화 몇 점이 걸려있지만 본래는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이 걸려 있던 곳입니다. 19세기 중반에는 그림을 걸 자리가 부족해 결국 전시장을 옮겼습니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작품들을 감당할 수 없어 1863년에는 떨어진 작품들만 모아 낙선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선정된 작품 사이에도 치열한 경쟁이 있었습니다. 애써 합격했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 벽면 꼭대기에 자신의 작품이 걸리면 안되었겠죠?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화가들은 심사위원들과의 관계도 신경 써야 했습니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 혁명이 터진 뒤 살롱전이 열리던 루브르 궁전은 혁명군에 의해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아카데미 출신뿐만 아니라 모든 화가가 살롱전에 출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많았던 살롱전은 19세기 후반 독립 화가들의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결국 막을 내리게 됩니다. 비록 많은 비난을 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살롱전이 프랑스 예술에 미친 영향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살롱전이 시작된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여전히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라 부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가이드 노트

'살롱 카레'의 옛 모습은 오늘날 인터넷에 떠도는 다양한 그림과 사진을 통해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옛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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