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로 만나는 파리 지하철역의 비밀

여행은 기본적인 욕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한 뒤, 홀연히 떠나는 여행이 더 이상 호사가 아닌 기본적인 욕구가 됐다는 걸 많은 이가 알게 됐다. 좋은 날씨 속에서도 우울한 무드가 계속되는 것은 같은 이유가 아닐까? 코로나 블루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넷플릭스 콘텐츠로 만날 수 있는 프랑스 도시 이야기를 준비했다. 첫 번째로 준비한 작품은 미드 <나이트폴(Knightfall): 신의 기사단 1.2시즌>과 파리다. 다빈치코드, 13일의 금요일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보자.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성전 기사단의 이야기

<나이트폴>은 실제로 존재했던 성전 기사단(Ordre du Temple 혹은 Templiers)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1139년 교황청이 공인한 성전 기사단은 기사수도회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부유했다. 이들은 십자군 전쟁 때 용맹하게 싸웠고, 한편으로는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유럽과 성지 곳곳에 요새를 축성했는데 프랑스 수도 파리에도 한 구역에 걸쳐 성전 기사단 영지(L’enclos du Temple)를 보유하고 있었다. 큰 성문과 수도원, 교회, 거주 시설 등이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나이트폴>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매력적으로 엮었다. 주인공 랑드리(Landry de Lauzon)는 허구 인물이지만, 필립 4세와 그의 신하인 윌리암 드 노가레 그리고 성전 기사단 마지막 총장인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y)는 모두 실존 인물이다. 시즌 1에서 랑드리는 성지에서 성배를 찾고 조안 프랑스 왕비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랑드리는 자신이 예수의 혈통이라는 걸 알게 됐고, 조안 왕비는 필립 왕에게 죽지만 성배를 깨뜨려 아이는 살아서 태어난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알아 챘겠지만, 이는 영화와 책으로 유명한 <다빈치코드>의 설정과 맞닿아 있다. <다빈치코드>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시테섬과 '13일의 금요일'의 기원

시즌2에서는 필립 4세와 노가레가 랑드리와 성전 기사단을 몰락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은 역사를 따르고 있는데 실제로 필립 4세는 성전 기사단이 외설스러운 행동을 하고 십자가를 경멸하고 우상(미라가 된 두개골, 세례 요한의 머리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을 섬겼다는 죄목으로 기소했다. 필립 4세의 이러한 행보는 성전 기사단에 진 빚을 모면하고 왕권강화를 이루려는 목적에서 비롯했다. 그는 교황청을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긴 아비뇽 유수를 주도한 교황 클레멘스 5세와 손을 잡고 성전 기사단을 와해시켰다.

이 사건은 13일의 금요일과 관련이 있다. 필립 4세가 성전 기사단을 잡으라고 명령한 날짜가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체포된 성전 기사단 단원들은 종교재판관 고문에 못이겨 거짓 자백을 했고, 1310년 많은 기사가 파리 시내에서 화형당했다. 1312년, 클레멘스 5세는 빈 공의회에서 성전 기사단을 공식적으로 해체했고, 기사단의 총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는 1314년 3월 14일 시테 섬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자크 드 몰레 총장은 노트르담 성당 쪽으로 자신을 묶어 달라고 말했고, 몸이 타 들어가는 사이에도 왕과 교황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신께서는 누가 틀리고 누가 죄를 지었는지 아신다. 우리에게 죽음을 언도한 자들에게 횡액이 곧 닥치리라(Dieu sait qui a tort et a péché. Il va bientot arriver malheur à ceux qui nous ont condamnés à mort).”

우연의 일치였을까? 클레멘트 5세는 자크 드 몰레 사망 이후 한 달 정도 후에 죽었고, 필립 4세도 사냥 나갔다가 쓰러져 1314년 11월 29일에 죽었다. 이때부터 13일의 금요일이 불길하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지금도 시테 섬에 가면 자크 드 몰레가 화형당한 터를 찾을 수 있다.

파리 메트로 3호선에서 만나는 성전 기사단의 흔적

1811년, 수도원으로 쓰였던 탕플 탑(Tour du Temple)이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면서 성전 기사단 영지는 제 모습을 완벽하게 잃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그리고 왕가 가족들이 유폐됐던 이 건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건물은 없어졌지만, 이 성전 기사단 영지 흔적은 3호선 Temple 탕플 역에서 여전히 만나볼 수 있다. 역 근처를 돌아보면 성전 기사단 영지터를 설명하는 표지판과 당시 지도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탕플 탑 흔적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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