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년살기 <스물둘, 파리에서의 사계절> Part 4. 여름

가을, 겨울, 봄을 지나 어느덧 파리에서의 마지막 계절인 여름을 맞이한 저자. 이번 여름 파트에서는 프랑스 곳곳에서 펼쳐진 문화 예술 축제를 온전히 만끽한 그녀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예술의 열기로 뜨거웠던 그녀의 마지막 계절, 여름을 함께 즐겨보자.

음악 축제

파리에서의 사계절 여름 2
'페트 드 라 뮈지크(Fête de la Musique)'는 매년 6월 21일 하루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개최되는 최대 음악 축제로, 도시 전체가 음악으로 가득 차는 날이다.

재즈를 사랑하는 나는 재즈 음악가들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역에서 내려 목적지인 브라세리까지 가는 길은 도보로 10분 정도에 짧은 거리였는데, 10팀이 넘는 공연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몇 발자국 걸을 때마다 음악이 짠하고 나왔다. 설렜다.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정말 예뻤다.

거리에서도, 내가 공연을 본 곳에서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했다. 맥주 한 잔과 함께 공연을 감상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춤을 추기도 하는 등 각자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향유했다.

나는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잘 때와 음악을 들으면 안 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음악과 함께하기에 이날은 특히나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날이 되었다. 파리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이 언제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6월 21일이라고 답한다.

파리에서 맞이한 생일

파리에서의 사계절 여름 1

테라스에 앉아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얘기를 나누고 맥주를 마셨다. 바람도 적당했고, 같이 있는 친구들도 좋았고, 노을 지는 파리의 거리도 좋았다. 소소하지만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때 우리 옆으로 자전거를 탄 남자가 큰 소리로 무언가를 외치며 지나갔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목소리는 강하고 굳건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궁금해져서 프랑스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가 외쳤던 것은 보들레르의 시라고 했다. 시를 외치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라니? 생일의 추억이 하나 더 채워졌다.

12시가 되기 전에 에펠탑 쪽으로 향했다. 에펠탑을 옆에 둔 채 다리를 자유롭게 달렸다. 그 후 케이크 초를 붙였고 축하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생일을 파리에서 맞이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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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봤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5개월 전부터 예매를 했고 그 어느 공연보다도 기대가 컸다. 고전만을 생각하고 갔던지라 각색이 많이 된 공연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덕분에 너무나도 신선했다. 무도회 장면에서 로미오를 쳐다보지 않는 줄리엣과 그런 줄리엣만을 바라보던 로미오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코메디 프랑세즈의 공연들은 다 특별하다. 무대장치, 연출, 연기 등등 모든 것들에 지루함이 없다. 총 8편을 봤는데 매번 갈 때마다 '설마 오늘도 새로울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한 번도 빠짐이 없었다. 이렇듯 이곳은 나에게 항상 신선한 자극을 주는 내가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극장이다.

아비뇽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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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비뇽 역에서 나와 밖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간 순간,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는 '아 이곳이다!'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연극 포스터들로 가득 찬 세상이 보였다. 연극이라는 글자만 봐도 반응하고, 연극 포스터만 봐도 좋아하는 나에게 아비뇽 페스티벌은 최고의 장소였다.

숙소에 짐을 놓고 밖으로 나왔는데 거리에는 역에서보다 더 많은 포스터들로 가득했고, 공연을 홍보하는 예술가들도 많았다.

예술가들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 혹은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짧게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고, 특이한 분장을 한 채 자전거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단체로 지나가기도 했다.

이곳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고 '아니, 이런 세상이 있단 말이야? 이렇게 좋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믿을 수 없는 곳이었다.

니스 재즈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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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접한 지 3일째 되던 날에 무작정 지른 표로 인해 6개월 뒤 니스 재즈 페스티벌에서 5일을 보내게 됐다. 이때쯤에 내가 재즈를 안 좋아했더라면 어떻게 했으려고... 또 하루도 아니고 5일씩이나... 나도 나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쉽게 식지 않을 거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나 보다.

페스티벌에서는 90살이 넘는 피아니스트의 공연도 볼 수 있었다. 해맑게 아이처럼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는 90살일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정있게 즐기고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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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마침 나를 처음 재즈에 입문하게 한 음악가들의 공연이 있었다. 덕분에 어느 선택보다도 멋진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재즈 바가 있는 샤틀레 역 근처를 멍하니 걷고 있는데 누군가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재즈 음악가였다. 이렇게 먼저 알아봐 주는 사이가 된 것도 내가 파리에서 보낸 지난 시간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공연을 보고 있는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모든 순간에 집중했다. 음악이 지나가는 순간들이 아쉬웠고, 소중해서 움켜쥐고 싶은데 금세 달아난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 모든 순간이 완벽했다. 비 오는 파리 거리 곳곳을 지나며 시작했던 1년의 첫날처럼 공연이 끝난 재즈 바에서 음악가들과 함께 잊지 못할 마지막 날이 끝이 났다.

저자: 문성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인 무대에서의 공연과 파리에서의 일 년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파리행을 택한 문성희 작가. 그렇게 마지막 연습실을 나오며 엉엉 울었고, 파리를 원망하며 파리에 가게 되었지만 결국 파리와 사랑에 빠져 돌아왔다.
<스물 둘, 파리에서의 사계절>에는 70번의 공연과 65번의 전시 관람을 통해 알게 된 파리의 재즈 바, 전시관, 특별한 장소 추천 글이 가득하다. 평생 예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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