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접하다
무료하게 쉬고 있던 늦은 밤, 이대로 하루를 끝내기가 아쉬워 파리에서 한 번쯤은 보고 싶던 재즈 공연을 친구와 함께 보러 가기로 했다. 실력 있는 음악가들만 공연할 수 있다는 파리 최고의 재즈 바였다. 와인을 마시며 재즈 공연을 보게 됐고, 음악가들과 음악의 매력에 단번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특히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음악에 완전히 집중해서 푹 빠진 모습이 놀라웠다.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고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또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다른 음악가들의 연주에 맞춰 가볍게 건반을 터치하는데, 내 귀에 들려오는 그 소리는 정말 놀라웠다. 집에 오는 길, 친구가 말하기를 음악가 자체가 음악 같았다고 했다. 나만 느낀 줄 알았었는데 열정은 모두에게 다 보이는가 보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재즈에 입문하게 되었다. 색다른 경험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와인을 먹어 몽롱한 상태에서도 또 다른 재즈 공연을 예매하고 재즈 영상을 보다가 잠들었다. 파리에서 있던 일 년 중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날이다.
첫 눈이 내린 날
창문 밖으로 예쁘고 커다란 첫눈이 펑펑 내렸다. 파리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던데...
너 나 할 것 없이 기숙사의 모든 친구들이 밖으로 나왔고 우리들의 눈싸움은 시작됐다. 이곳저곳에서 눈덩이들이 날아왔다. 처음 본 친구들도 있었지만 눈싸움에 예외란 없다. "Bonsoir안녕" 인사하고는 나도 함께 눈을 던졌다. 그렇게 모든 눈이 다 사라져서 더는 눈싸움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놀았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하루쯤은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
파리에 있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었다. 그래서 매일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애썼다. 정말 나가고 싶지 않은 날에도, 또 가고 싶지 않은 장소도 꼭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재미도 크게 느끼지 못할 때가 있었고, 준비하고 이동하고 사람들에 치이는 그런 상황들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면 더 큰 자괴감이 나를 잠식했다. 그래서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결국은 탈이 났고, 나는 긴 휴식을 필요로 했다.
강박관념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데는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도달한 결론으론 우선 "꼭 매일을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야 할 필요는 없어!" 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기로 했다.
개선문 카운트다운
"Dix, neuf, huit...trois, deux, un!!! 2018...! Bonne année!"
추운 날씨 속에 개선문 앞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를 관람했다. 그 후 신년을 맞아 에펠탑까지 본 후 집으로 돌아왔다.
1월 1일, 내가 프랑스에 도착한 지 벌써 4개월이 흘렀다. 그간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씩 적응하고 성장해왔다. 처음과는 다른 내가 되었다.
저자 : 문성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인 무대에서의 공연과 파리에서의 일 년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파리행을 택한 문성희 작가. 그렇게 마지막 연습실을 나오며 엉엉 울었고, 파리를 원망하며 파리에 가게 되었지만 결국 파리와 사랑에 빠져 돌아왔다.
<스물 둘, 파리에서의 사계절>에는 70번의 공연과 65번의 전시 관람을 통해 알게 된 파리의 재즈 바, 전시관, 특별한 장소 추천 글이 가득하다. 평생 예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