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 작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복잡한 군사작전이었다. 6천 대 이상의 군함, 수송선, 보트를 동원하여 육군들이 영불해협을 건너고 수많은 전투기들이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1943년 퀘벡회담에서 유럽대륙에 'Overlord'라는 이름의 대상륙작전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독일사령관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연합국이 영국에서 가까운 프랑스 북쪽 해안에서 추진하지 않고 세느강의 작은 만 연안에서 이러한 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연합군은 빠-드-깔레 기슭보다 방비면에서 허술했던 바쓰-노르망디 강기슭에 상륙함으로써 기습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반격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기 위해 연합군측의 공군과 해군은 첫 부대가 상륙하기도 전에 이미 대서양에 있는 요새에 대량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공격시에 특수 장갑차 (수륙양용탱크, 지레제거탱크, 화염방사탱크)들이 공격부대를 지원사격을 했다.






상륙작전은 6월 5일 밤에서 6월 6일 세 개의 공수사단을 전방의 두 측면에 투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낙하산 부대는 생-메르-에글리즈 지구에, 영국 낙하산 부대는 랑빌 지구에서 몇몇 주요 기점을 탈취했다. (포병부대, 다리, 도로, 수문)


  


  


얼마되지 않아 몇백 명의 병사들의 거침없는 공격으로 Pointe du Hoc의 요새화된 지점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같은 시간에 6시 30분에서 7시 30분 사이에는 13만 5천 명의 군인과 20만대 가량의 군함들이 바다를 통해 예정된 해안(유타, 오마하, 골드, 쥬노, 스월드) 다섯 곳에 상륙했다.


그날 저녁에 결정된 목표들을 모두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작전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손실도 오마하 해안을 제외하고는 예상보다 적었는데 그곳에서는 미국군들이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힘이 부족했다. 이제 공격 장소였던 해안 5곳을 연결해서 독일군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남은 임무였다. 


  


이렇게 연결된 해안은 해협을 따라 80km의 단단한 출발 기지를 구축하게 되고 연합군들은 계획한 바대로 일을 추진해 나갔다. 영국군들이 깡 Caen 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독일 장갑차들이 바쓰-노르망디 지방의 도청소재지 주변으로 몰려가도록 시도했다. 그러는 동안에 미국군들은 꼬땅땡반도를 고립시키려고 유타로부터 바른빌과 6월 26일 탈환했던 쉘부르항을 향해 돌진해 나갔다. 계속해서 미군들은 남쪽으로 있는 독일 방어선을 깨뜨리려고 애썼으며 그 반대쪽 전선에서는 영국군들이 깡 Caen을 탈환하려고 싸웠다. 7월 중순 이후에는 이 도시를 드디어 탈환하고 생-로를 점령하게 되고 모르뗑-아브랑슈쪽으로의 방서선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는 희소식이 계속되었다. 빠똥 군대 일부를 고립시키기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저항이 약화된 독일군들은 세느강으로 후퇴하려고 했다. 그러자 북으로는 영국군, 캐나다군, 폴란드군, 남으로는 미군과 알렁쏭으로부터 오는 르 클레르 장군의 프랑스군들이 집게 모양으로 에워싸서 팔레즈-샹브와 지역에서 두 부대의 독일군을 생포하게 된다. 노르망디 전투는 1944년 8월 21일 뜨르네-쉬르-디브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연합군들이 대륙에서 막 첫 승전을 한 후였다. 삼일 후에 연합군들은 세느강을 넘어 파리로 입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