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요새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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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요새 유적



역사, 정복, 전쟁, 그리고 실패의 증거이기도 한 요새와 강력한 성은 프랑스국토 내에 명백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선사시대부터 약탈자에 대항하기 위하여 동굴 거주지를 강화시켰다. 골 족의 요새도시는 엉세륀느의 요새화 된 마을처럼 도랑으로 둘러 싸여 있다. 군사 건축은 로마시대에 완벽하게 되었다. 중세기간 동안, 전략적인 형태로 영주는 봉건 주민들의 안전을 제공하고 그들은 소유의 십 분의 일을 영주에게 바치면서 요새가 많이 증가하였다. 가장 아름다운 요새와 봉건 건축의 망루는 꾸시-르-샤또 (에슨느), C샤또네프-엉-오조와 (꼬뜨-도르), 샤또뒹(위르-에-로와), 벵센느(발-드-마른느), 까르카손 (오드 지역), 에귀-모르뜨와 그 성벽 (가르 지역), 빌네브-레-아비뇽(가르)에 있는 르 포르 쌩-앙드레, 앙제(멘-에-르와르), 삐에르퐁(와즈), 세당 (아르덴느)…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피레네에서는 아주 굉장한 카타르 성들을 잊지 않게 하는 산의 배경과 함께 나타나는 환상적인 실루엣을 볼 수 있다.


17세기에 루이 14세에 의해 요새 공사 관리인으로 임명된 프랑스의 S. 드 보방 원수는 몽-도펭 (오뜨-알프스), 브장송(두브), 벨포르(벨포르 영역) 같이 요새화 된 한 가운데, 항구나 작은 요새 같은 전략적인 지점을 둘러 싸게 했다. 19세기에, 건축가 E. 비올레-르뒥은 까르카손이나 삐에르퐁 같은 수많은 요새를 보수 했다. 그의 작품은 종종 토론 되는 경향이 있다. 오-쾨닝스부르그 (바-렝)의 요새는 1900년에 기욤 2세의 건축가, 보도 엡하르에 의해 건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