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유적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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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유적 센터 75000 Paris fr


« 박물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도시의 한 장소, 공적에 따라 구별되는 몇몇 사람들을 구별하여 기리기 위해 공공비용으로 유지하는 곳… 뮤즈, 여신과 미술을 보호자의 이름은 부인할 수 없는 박물관의 근원이었다..." (디드로와 알렝베르의 백과사전).

박물관에 대한 이 정의는18세기에 널리 퍼져있던 사회적 현상이었다. 사람들에게 관람을 목적으로 하고, 또 교양을 쌓게 하기 위하여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 예술가들은 루부르에 왕립 작품전시회 개최를 요구했다. 1725년 이후 그곳의 까레 홀에서 전시회가 있었다. 프랑스 혁명은 국가재산을 압류하면서1793년 공간 박물관학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집정관 시대는 지방에 있는 박물관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기원이 된다. 박물관들은 증가해 갔고 한시적인 전시회의 개최를 위해 작품들을 상호 교류하면서 전 유럽에서 발전해 나갔다. 1887년 공화국은 예술 작품 확보를 위해 역사 기념물 및 유적 관리소를 창설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박물관 건축은 파리의 뽕삐두 센터나 루브르처럼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건축된다.
20세기에, 박물관학은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대중 예술과 전통 박물관의 설립자 조르쥬–앙리 리비에르는 민족학 분야와 사회 발전 분야에 있어서 박물관의 새로운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게 하여 1968년 처음 유적 센터가 탄생하게 된다. 이것들 가운데 윙거쉐임(오-렝)의 알자스 유적센터, 푸르미(노르 지방)의 유적센터, 띠에르(쀠드 돔)에 있는 꾸뗄르리 유적센터, 바이욘(피레네 아틀란티끄)의 바스크 박물관등을 들 수 있다. 기록된 사항들은 오늘날의 관람객이 누구인지를 안내해 주며, 바로 그 관람객이 박물관의 우선적인 목적의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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